[찬양교회] 로마서 (21강)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우리의 책임 (롬 9:19-29) [정영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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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음
제목부터 한번 좀 자 같이 볼까요?
제목 같이 읽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우리의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 같이 말씀을 좀 보겠습니다.
지난번에이
부분을 보려면 예레미야 18장을 봐야
된다고 제가 말씀드렸었죠.
>> 예.이 이 로마서 9장에서부터
11장까지는
바울 서신의 다른 서신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하나가 있어요.
아주 주된 특징이에요. 그건 뭐냐면
이스라엘에 대한 얘기다라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이 이스라엘을
우리 영적 이스라엘하고 해석하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대체적으로 무천년적 관점을 취하시는
분들.
그분들 입장으로이 9장부터 11장까지
보면 거기에서 뭘 찾냐면 영적
이스라엘을 찾아요.
발견해 내고. 그런데 그 영적
이스라엘이 없는게 아니에요. 그 말을
다른 말로 얘기하면 참 이스라엘
말하는 거예요. 참 이스라엘. 누가
참 이스라엘이냐? 이거 말하는
거거든요. 그 참 이스라엘을 찾는데
민족적 이스라엘도
여기 있다는 거예요. 9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 속에는 민족적
이스라엘 하나님이 그 민족적
이스라엘을 택하셨잖아요.
그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 예배와 율법과 약속들과 이런
걸 거기다 담아두셨잖아요.
그들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바로이 9장부터 11장까지에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그 이스라엘을 얘기하는데
있어서이 지금 오늘 하고 있는이
부분이 서론 부분이다 생각하시면
돼요. 지난주에 했던 거와 연장
선상에서 오늘 말씀이 어떻게
시작하냐면요. 이렇게 시작해요.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책망하시는가? 이렇게 시작해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오늘 성경을 좀
찾을 거예요. 그러니까 다 잘 준비해
놓으세요. 그렇다면이라는
말이 뭐냐면 그렇다면 앞에서 무슨
얘기를 했잖아요. 그 그 얘기를
받아서 그렇다면이라고
얘기했으니까 여기 그렇다면에 해당하는
말이 뭐냐면 18절이에요. 18절.
우리 하가 말씀으로 지진한 주에 했던
거지요.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책망하시는가 이거예요, 지금. 아니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실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신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그 사람을
책망할 수 있느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면서요. 근데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그 사람을 왜
책망하느냐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이 질문이
질문이 이해가 되셨죠?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를 향하여서 계속
이렇게 해 오셨어요. 그니까 이렇게
해 오셨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책망할 수 있느냐라는 거죠.
여기 오늘 본문에 보면 22절에 보면
진노의 그릇 23절에 자비의 그릇이
있어요. 이걸 미리 두시고 여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 이게 이제 자비의 그릇을 말하는
거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이건 진노의 그릇을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이이 토기장이 비위에서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반을
나눠서 하나는 진노의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자비의 그릇을 만들 권한이
토기장이에게 없느냐 그 얘기예요.
있어요? 없어요?
>> 있어요.
>> 있어요. 지금 그거 얘기하는 거예요.
그렇다면이 진노의 그릇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이걸 책망하면 되겠느냐?
지금이 질문이라는 거죠. 확실히
이해가 되셨죠?이
이 질문 자체는 우리가 봤을 때 아주
그럴 듯해요. 정당해 보여요.
근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이
진노의 그릇이 원래는 아니었는데
아니었는데
야 내가 너를 진노의 그릇으로
만들었어. 너는 이쪽으로 가야 돼.
이얘는 이쪽으로 오려고 애를 쓰는데
하나님이 아니야. 너는 이쪽으로 가야
된다니까. 이쪽으로 이쪽으로.
밀어내서 진노의 그릇으로 간 거예요.
그게 아니라고 얘기했잖아요. 이게
사람의 실존을 지금 모르니까 이런
질문이 나온 거예요. 사람의 실존
지금 현재 우리의 위치가 뭐냐면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으면 다 진노의
그릇이에요.
다 그중에 얼마를 하나님이 택해서
자비의 그릇으로 삼아 주신 것뿐이지
우리의 실조는 다 진노의
그릇이라고요. 원래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사람을
책망하시는가?이 질문은 뭐냐면 한
이렇게 보기에는 그럴듯한 질문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인간의 실존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었다는 거예요.
나는 선하게 살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이쪽으로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나서 책망하시는 것처럼 보여졌다는
거죠. 그게 아니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책망하실 수 있다라는 거지요.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게
있어요. 의, 선, 공평.이
기준이 뭐지요?
누가 의, 선, 공평을 정의하지요?
하나님이 정의하시죠. 근데 우리는
무슨 실수를 하냐면 내가 정의를 해
놓고 그 정의 안에서 하나님을 자꾸
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 기준에 안
미친다고 하나님을 자꾸 뭐라고 하는
거예요?이 질문 자체가 어찌하여
하나님이 어 사람을 책망할 수
있는가? 이거 누구 기준이에요? 이건
사람 기준이라고 내 기준. 공평
똑같아야 된다는 거예요. 모든게 다
똑같아야 된다는 거죠. 이거 누구
기준이에요? 이거 우리 기준이죠.
하나님의 기준은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의,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공평.
이건 하나님이 정의하시는 거예요.
그게 선이고 의이고 공평한 거예요.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아멘 하는
거지. 내가 정해 놓고 하나님이
이쪽으로 마치 따라와야 되는 것이냥.
이런 실수를 범할 때가 많이 있어요.
에베소서 1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셨는데 왜 하셨다고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그걸
하나님이 기뻐하셨대요.
왜 기뻐하셨을까요? 아, 저는
몰라요. 제가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신
거예요. 우리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
그 뜻을 따라 자녀로 우리를 삼아
주셨어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 인간들의 실수는
자신이 정의한 의, 선 공평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판단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을 평가해요.
그러면서 이런 오늘과 같은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찌하여 사람을 책망하시는가? 사실이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책망하시는가라는이 질문은
나올 수는 있으나 실제로 할 수는
없어요. 왜냐면 잘 보세요.이 질문은
누가 어떤 이들이 하는 질문이에요.
하나님께 예정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는 질문인가요? 이게
아니죠. 그렇지 않은 이들이 하는
질문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이들은이 질문을
할 수가 없어요. 왜요? 첫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이 있는 위치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할 수 없어요. 질문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지금이 부분을 자기가 가상으로
생각하여 질문하면서 대답하는 거예요.
그 형식으로 지금 말해 주는 거예요.
실상 믿지 않는 이들은 이런
질문조차도 할 수 없어요. 이건 언제
가서 할 수 있어요? 심판 때 앞에
가서. 심판때 앞에 가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라고
얘기는 해 보겠죠. 그러나 하나님
앞에 딱서는 순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 질문
자체도 할 수 없어요. 아 하고 그게
다 알아지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런
질문은 실제로는 할 수 없는
질문이다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주는 거예요.
그게 뭐냐? 그걸 대답하기 위해서
토기장이 비유를 지금 바울이 들고
나온 거예요. 토기장이 비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토기장이
비유는 원본이 아니에요. 원본이 제가
뭐라 그랬어요?
기억하시나요?
토기장이 비우는 원본이 아니고
어디에서 차용해 온 거예요?
어디서요?
구약에서 차용해 온 거예요. 구약
어디요?
예레미야 18장. 거기서 차용해 온
거예요.
제가 계속 얘기했잖아요. 논문을 쓸
때도 내 어떤 주장을 할 때 이게
옳다라고 강력히 주장하기 위해서
나보다 더 권위를 갖고 있는 이들의
주장을 일로 끌어오는 거잖아요. 그게
논문의 주장의 내용이에요. 그것처럼
바울도 지금 바울이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이게 하나님에 대한 얘기라는 걸
말하 증거하기 위해서 구약에 있었던
예레미야가 했던 그 얘기를 가지고 온
거예요.
그럼이 내용이 어디 있느냐? 예레미야
18장에 있는데 오늘 먼저 어 로마서
9장에 있는 내용부터 더 확실하게 좀
해 봅시다. 9장 21절을 펴
보세요. 자 여기에 보면 토기장이가
하는 모양이 나와요. 같이 읽어
볼게요. 시작.
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 여러분 있어요? 없어요?
>> 당연히 있죠. 여기를 이렇게 책갈피로
딱 해 두시고 자 예레미야로
넘어갑니다. 예레미야 18장
3절에서 4절 보겠습니다. 같이
읽어요. 시작. 그래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갔더니
토기장이가 마침 물래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토기장인은
진흙으로 그릇을 빚다가 잘 되지
않으면 그 흙으로 다른 그릇을 빚었다
>> 자 여기 옛날에 개혁 한글에서는
그릇이 파상함에 이렇게 나왔어.
파상함에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얘기예요. 자, 토기장이가
물레를 돌리면서 그릇을 막 만듭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볼게요. 이렇게
밑에는 넓수록 이렇게 좁아지는요 홀리
호리 같이 이렇게 된 거를 만든다고
합시다. 밑에는 다 돌아가면서 완성을
쭉 해서 이제 윗부분 이게 요렇게
얇은 홀리한 부분을 만들려고 이렇게
하다가 갑자기 이거 확 틀어졌어요.
그러면 그거 다시 만들기 힘들어요.
다시 얘를 막 반죽을 해서 다시
처음부터 해야 돼요. 근데 그러기
귀찮잖아요. 그러니까 위에 이거 확
틀어진 부분을 딱 잘라내고 밑에
널적하게 되어 있는 부분을 손을 봐서
널적한 무슨 다른 그릇을 만들었다고
하자고요. 지금 그 모습을 얘기하는
거예요. 원래이 토기장이가 계획했던
그릇이 아니고 다른 그릇 이게 중간에
만들다가 실패하니까 다른 그릇을
만들었지요.이
이 부분에 대해서 예레미야에서 뭐라고
얘기하나 보세요. 7절부터
10절까지예요.
7절부터 10절.이 토기장의 비유를
통해서 뭘 말씀한 거냐면 이거예요.
7절 시작. 내가 어떤 민족이나
나라의 뿌리를 뽑아내거나 그들을
부수거나 멸망시키겠다고 말을
하였더라도 그 민족이 내가 경고한
죄악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려고 한 재앙을 거둔다.
그러나 내가 어떤 민족이나 나라를
세우고 심겠다고 말을 하였더라도 그
백성이 나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내가
보기에 악한 일을 하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기로 약속한 복을
거둔다.
>> 이걸 지금 설명하려고 했던 거예요.
하나님이
이해가 되셨죠? 여기 하나님의 계획이
여기 지금 주권적 섭리가 있어요.
주권적 섭리가 있어서
어떤 민족이나 나라 이거는 민족
나라만 해당하는게 아니에요. 우리
개개인도 포함되는 거예요. 우리
개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있었단 말이에요. 계획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어떤 민족이나 나라
개인을 뿌리를 뽑아내거나 그들을
부수거나 멸망시키겠다고 하나님이
계획을 했던 거예요. 주권적 섭리로
계획을 했는데 그 민족이 하나님이
주신 경고를 듣고 그 경고한 죄악에서
돌이킨 거예요. 회개했단 얘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요?
하나님의 계획은 있었으나 그들이
회개하니까 어떻게 했어요? 뜻을
돌이켰어요.
뜻을 재앙을 거둔다고요. 여러분 이런
예가 있어요? 없어요?
>> 그렇죠. 니누에
요나한테 니누에라고 가라고 그랬더니
다시수로 도망갔는데 결국은 니누엘로
가서 니누엘은 이방 나라잖아요. 이방
나라. 그 거기 멸망시키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는데 그들이 죄를
뒤집어 쓰면서 회개했잖아요. 그
민족이.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돌이키셨어요.
실제 있단 말이죠. 반대의 경우.
그러나 내가 어떤 민족이나 나라를
세우고 심겠다고 말을 하였더라도 그런
계획을 가졌더라도 그 백성이 나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내가 보기에 악한
일을 하기만 하면 계속해서 한다는
얘기예요. 계속해서.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기로 약속한 복을 어떻게
한다고요? 거둔다.
이게 원본이에요.
이게이
중에 바울이 취하여 가져간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부분만 얘기한
거예요. 로마서에서
그 뒷부분은 얘기하지 않은 거예요.이
예레미야 비유 속에서는 어떤게 있냐면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어요. 바로 우리의
책임이라는 부분. 에 대해서 지금
얘기를 하고 있다고요. 동시에 주권과
책임을 다 얘기하고 있다고요. 인간의
반응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 또한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두 가지를 다 얘기하고 있다고요.
예레미야 비유 속에서는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인간의 자유 의지 다
얘기해요. 동시에 얘기해요.
로마서에서는요.
로마서의이 비유를 왜 들었는지 22절
로마서 9장 22절 23절에 얘기하고
있어요. 자, 같이 읽습니다. 시작.
영광을 받도록 예비하신 자비의
대상들에 대하여 자비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리시고자 하셨더라도 어떻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 지금 바울은 뭐 얘기하고 있죠?
부르심 얘기하고 있지요. 부르심은
신앙의 시작 부분 얘기하는 거예요?
과정을 얘기하는 거예요?
>> 시작 부분 얘기하죠. 제가 그래서
계속 얘기했잖아요.이 계시록 그
세미나 하면서 부르심 부르심 여기는
뭐라고요?
절대적 하나님 주권만 있다고 우리
인간의 자유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다고 얘기했잖아요.
이미 부름받은 이들의 살아가는 삶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 인간의
자유의지 인간의 책임이 여기
들어간다고 얘기했지요.이
부분들을 놓치고 인간들이 만들어 낸
신학의 눈으로 자꾸 치우쳐서 보니까
그러니까 자꾸 엉뚱한 소리 하는
거예요.
이거는 계시록할 때 다시 한번 제가
확실하게 말씀을 드릴게요.
바로 바울은 로마서 9장을 통해서
토기장의 비율을 통해서 바울이 지금
얘기하고 싶은 건 뭐냐면 하나님의
부르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다.
이거 말하고 싶은 거예요. 하나님
주권 오로지 주권적인 역사. 그러니까
같은 토기장의 비유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분만을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이 부분만을 보고 어떤 이들은
자꾸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요. 봐.
하나님의 주권이지 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의 인간의
자유의지는 빼버리고 우리의 인간의
책임지에
대한 책임은 순종이라는 부분은 다
빼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부분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거예요.
그게 안타깝다라는 거죠.
성경을 보세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에게 명령형으로 주는 내용이
있으면 안 되지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시는데
명령형이 주어졌다는 얘기는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는 거 아니에요. 우리의
책임이란 말이죠. 신앙이 같이 가야
되는데. 자,이 부분은 제가 여기서
멈추고 그렇다면 왜 바울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는데 왜 하나님의 주권 부분만을
이렇게 강조해서 지금 설명하고
있는가?
바울은 지금 누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죠?
다시 바 로마서 9장으로 이제 환원해
볼게요. 다시 바울이 지금 누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죠?
누구?
바울이 처음에 9장 초반에 자신은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떨어져 나갈지라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얘기했던게
뭐예요?
>> 이스라엘 자기 동족 이스라엘 얘기하고
있었잖아요.
자기 동족 이스라엘에 대해서 지금
바울이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그런데 지금 보니 지난번에
했던 거예요. 지금 보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다.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실제
그렇잖아요, 지금. 그런데 본인이
자문 자을 하면서 그러나 완전히
버림받은 것 같지 않다. 왜냐?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 이렇게 들어갔죠.
아브라함에게서 태어났다고 하여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 누가 이스라엘로
불려요?
약속의 자녀. 그래서 제가 지난번에
참 이스라엘에 대해서 얘기했잖아요.
참 이스라엘. 어떤 이들은 이걸 영적
이스라엘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보다도
참 이스라엘이라는 말로 하는게 저는
더 좋겠어요. 영적 이스라엘은 너무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아서 참
이스라엘이 누구냐?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약속의 자녀 누구예요?
이삭. 그다음에 이삭의 자녀의
쌍둥이었는데 누구하고 누구예요?
>> 에서와 야곱. 그중에 누가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어요?
>> 야곱. 그러니까 육체적 씨에서 났다고
하여 그들이 다 참 이스라엘이
아니다.
약속의 자녀가 참 이스라엘이다. 자
에서와 야곱도 봐라. 하나님이 그들이
무슨 나서 뭐 잘못하거나 잘하거나 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
하나님은 야곱을 기뻐하고 애선을
미워했다. 하나님께 달렸다. 택함은
그러면서 쭉 얘기해 오잖아요.
그러면서 무슨 얘기 했어요?
약속의 자녀가 참 이스라엘이다.
그러면 여기서 약속이 뭐예요?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는 약속.
여러분이 태에 있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어 아무게는 태어나서 예수를 믿게 될
것이다. 뭐 이런 거 약속받았어요?
그런 거 없잖아요. 그럼 여러분이
받은 약속은 뭐예요? 대체
약속의 최종적인 꼴이 뭐예요? 약속.
뭐에 대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셨어요?
뭐에 대해서 하면은 답이 나오기
힘들어요. 제가 이거 얘기하면 여러분
답이 바로 나와요. 누구에 대해
약속하셨어요?
그 예수님 바로 나오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약속은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에요. 메시아, 예수.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모든
이들. 그들이 약속의 자녀라고요.
그들이 최종 약속. 예수 그리스도.
구약에서부터 쭉 되어왔던 약속이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얘기잖아요. 예수님도 너희가 구원
저기 구약에서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이 성경이
누구에 대해서 증언한 거라고요?
예수님 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한 거라고 성경이 얘기하잖아요.
예수님도.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그들이 약속의
자녀들이라고요. 그들이 약속을 가진
거예요.
그들만이 참 이스라엘이에요. 그런데
지금 바울이 얘기하는 자신의 민족적
이스라엘 그들 중에도 다 멸망한게
아니고 그들 중에도 참 이스라엘이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약속을
여전히 지금 실행하고 계시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러잖아요.
바울이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해서 그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약속이 패하여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통해 하실 하나님의 계획
이게 뭐냐면 여기에서 이제 예언적
원근 통시법이 나오는 거예요. 잘
보세요.
언약들, 예배, 약속들. 이게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특권이었잖아요.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그
약속들을 그 언약들을 예배들을 그
조상들을 다 주셨어요. 율법도
주셨어요.
예언적 원근 통시법이 뭐예요?
한 번의 예언, 여러 번의 성취.
예언적 원근 통시잖아요. 그러면서
계시가 확대되지요.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과 예배와
약속들 이스라엘에게 담아 주셨어요.
그런데 이게 예수님의 초림 후에 이게
어디로 확대돼요?
이방으로 확대돼요. 그래서 이방도 그
언약과 예배와 약속들에 참여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시는 거예요. 이게
예언적 원근 통시법이에요. 이게
이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먼저 부르신
거예요.
이스라엘을 먼저 부르신 거예요.
거기에 언약과 예배와 약속들을 담아
두시기 위해서 먼저 부르신 거지
이들만을 부르신 건 아니에요.
먼저 부르셔서 담아 주시고 언약을
담아 주시고 우리 이방을 그 언약
속에 함께 동참하게 만드신 거예요.이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요한계시록의
내용도 오해가 없어요. 그런데이
개념이 없으니까 어떻게 바뀌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부르심
따로 이방을 부르신 부르심이 따로
있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자꾸 그러다
보니 마지막 7년 환난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시간이다.
그러므로 우리 이방 교회는 환난기가
되면 우리는 다 휴고되어 올라간다.
이렇게 이스라엘과 이방을 두 개로
나눠 놓으니까 엉뚱한 해석이 나오는
거예요. 성경에 없는 말도 안 되는
해석이 나오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
이스라엘을 먼저 부르셔서 우리 이방을
그 언약에 참여하게 하셔서 이들을
합하여 참 이스라엘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들이 마지막 시대를
같이 통과하는 거죠.이
이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마지막
그림도 제대로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마치 이스라엘이 버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으셨다.
참 이스라엘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 중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 중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려면 인간의 자유 의지를 말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말해야 될까요?
예.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말해야
되지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 토기장이
비에 의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 부분을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이 절대 주권적
역사를 어느 정도까지 하시냐면 바로
생각해 보세요.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될 목적으로 바로를 택하셨어요.
여기에서 보면 여러분 긍휼의 자비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이 있는데 자비의
그릇만 하나님이 택하시는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무슨 얘기예요?
진노의 그릇도 하나님이 택하신다라는
거예요. 진노의 그릇도
바로가 그 예잖아요. 그 진노의
그릇을 택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도록 하셨어요.
오해하시면 안 돼요. 바로는 하나님을
계속 믿고 싶었는데 간절히 믿고
싶었는데 하나님이 안 돼. 안 돼.
너는 이렇게 쓸 거야 하고 이렇게
버리신 거예요. 이렇게 오해하면
하나님이 왜 책망하시느뇨?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근데 그게
아니라고요. 처음부터 그는 진노의
그릇이었어요.
그대로 그냥 놔두신 거예요. 유기하신
거예요.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언행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이름을
나타나게 하신 거지요. 하나님의
능력인 거지요.
하나님께서 미리하신 자기 백성을
버리시는가? 아니요. 안 버리세요.
무슨 얘기예요?이 미리하신 자기
백성이 누구예요? 민족적 이스라엘.
안 버리셨다니까요. 로마서 11장 펴
보세요.
로마서 11장 25절 하반절.
이방 사람의 수가 거기 하반절에서
26절 상반절까지요. 시작. 이방
사람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가 완해진 대로
있으리라는 것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31절
>> 시작.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
자비하심을 잊게 될 것입니다.
>>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버리셨어요?
아니요. 안 버리셨어요.
미리하신 자기 백성을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아요. 부르심이 다를
뿐이에요. 제가 계속 얘기하잖아요.
부르심이 다를 뿐이에요.
예레미야 토기장의 비유를 확장해서
여기다 적용해 보면 이런 거예요.
이방인은인 우리가 참 이스라엘로
부름을 받게 됐어요. 은혜주. 우리
편에서 할 건 감사 정말로요.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안
돼요? 자고하면 안 돼요. 자고라는
거 스스로 교만해지면 안 돼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돼요. 분명히 예레미야에서 이렇게
계획했지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바꾸신다고 얘기했지요.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해요?
나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어.
내가 어떻게 살아도 변개되지 않아.
이런 성경에 없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지요. 그런데
예레미야를 보세요. 아니라고
얘기하잖아요.
약속을 받았어도 그 그릇으로 택함을
받았어도 그렇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고요? 복을
거두신다고요.
거두신다니까요.
로마서 11장 22절에 이렇게
나와요.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세 번역 그렇지 않으면
그대도 잘릴 것입니다.
잘린다는 거예요. 잘린다는 거.
그런데 우리는이 부분을 놓치고
하나님의 주권 부분에만 얘기해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나는 구원
얻었어. 여기에서 안도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아니라고요.
아니라고요. 바울은 이스라엘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주권 부분을
강조했을 뿐이에요. 다른 걸 바울이
전체적인 내용을 얘기하고 싶었다면
예레미야 내용을 전체를 다 가져왔을
거예요.이
후반 부분 우리의 자유 의지로
순종하며 나가야 되는 부분.이 부분은
어디에 나올까요?
이게 바로 로마서 12장부터 나오는
얘기예요. 12장부터.
한 부자 부부가 있었습니다. 고아원을
방문했어요.
거기에 가면 많은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들을 다 데려올 수 없어서 그중에
한 아이를 선택했어요. 양자
삼았어요.이
아이는 부잣집 자녀가 됐어요.
양부모의 재산을 상속받는 자가
됐어요. 순식간에 하루 아침에 신분이
완전히 바뀐 거예요.
원인이 뭐죠?
왜 이렇게 바뀌었죠?이
아이가 잘 보였나요?
그래서 이뻐서
아니요. 그 양부모의 선택에 의해서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누구 생각이에요? 이게이 하나님.
대여섯 명의 되는 아이들이 물에
빠졌습니다. 그걸 봤던 어떤 수영
잘하는 사람이
뛰어들었어요.
수영을 해 가지고 아이를 구출해
냅니다. 근데 여러분 수영이 해 보신
분들 아시지만 수영하는게 여기서 한
10m 정도 된다고 해도 내가
걸어가는 거하고 수영해서 가는 거하고
체력이 어때요?
완전히 차이나지요.이 사람이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그걸 왔다 갔다 하면서
한 아이 구해내고 한 아이 구해내고
세 명을 구해냈는데 도저히 그다음에는
자기도 지쳐서 갈 수가 없었던
거예요.이
일이 비난받아야 될 일인가요?
왜 나머지 명을 다 구하지 못하고 세
명만 구했냐고 비난받을 일인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러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대해서.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어요. 선택받은 우리 편에서 할
일은 감사밖에 없어요. 그러나
선택받지 않은 이들은 하나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렇게 할 수가
없다고요. 원래 그들은 그렇게 되기로
뒤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길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선택한 길로 가고 있었을
뿐이에요.
우리에게 이제 결론입니다. 우리가
여기이 비유를 통해서이 토기장의
비유를 통해서 생각할 것. 바울은
지금 이스라엘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지만이
말씀을 받은 우리는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거죠.
우리는 예레미야의 비유까지 들어가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되는지까지도
생각하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계획을 하셨어도 내가
거기에 순종하며 따라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복을
거두실 수도 있다. 생각하셔야 돼요.
아니 사람들에게 평안함을 주고
안정감을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예. 요즘은 너무 평안함과 안정감을
줘 가지고 사람들이 다 방종해요.
교회 안에서 다 방종해요.
때로는 하나 이거는 제 얘기가 아니고
예레미야에 있는 말씀이잖아요.
예레미야 그 18장에 가면 그
뒷부분에 누구에게 대해서 얘기하냐면
이스라엘에게 얘기해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제 재앙을 준비해 놨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라. 이렇게
얘기하세요. 하나님의 계획은
재앙이에요. 그러니까 너희가
회개하라. 그 회개하면 어떻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돌이키시겠다는
거예요. 그 재앙이 뭐예요? 재앙의
내용이
예레미야서니까.
그다음 어떻게 되는 거예요? 예.
포로로 끌려가는 거예요. 바벨론에.
그거 준비해 놨으니까 그거 그렇게
되지 않도록 너희가 회개하고
돌아와라.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막아 주시겠다고.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그렇게
하라. 명령을 그렇게 말씀을
선포하라라고 하시고 그 밑에 줄에 또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네가 그렇게 얘기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까지 다 아세요?
그래서 결국은 바벨론의 포로로 가는
거예요. 그 일이 벌어졌어요. 그럼
이제 우리에게이 말씀이
적용되어야겠죠.
마지막 시대 또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계획이 있어요. 그 계획이 재앙이건
마치 이스라엘에게 지금 앞에 있는
재앙이건 아니면 복이건 상관없이
상관없이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세요?
복을 주시기로 했던이 민족이 여전히
그 복의 대상으로서의 삶을 살면
하나님은 복을 주시겠죠. 그런데
재앙이라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너
회개하라고 했을 때 회개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는 거예요? 바꾸신다는
거예요. 복을 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답은 나왔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서이
시대의 풍조에 휩쓸려 사는게 아니라이
풍조를 거스러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 결심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거죠. 그 순종 그게
우리에게 필요하다라는 거예요.
이제 우리는 옛사람이 아니에요. 우리
새 사람이 됐잖아요. 그럼 세 사람의
합당한 삶을 살아내야 된다. 물론
그렇게 살아낼 때 하나님이 우리를
그냥 두시지 않고 어떻게 하신다고요?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우리 길을 리더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세요.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적으로 끌고 가시는 분이
아니에요.
우리를 인격적으로 리더해 가시는
분이죠.
꼭 기억하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금성에 민감해져야 되고 순종함으로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여
순순종하는 복종하는 그런 길을
선택하고 주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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